문득... 은 아니고 이미 한참 전부터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은 프리랜서로 연구 용역을 하고 있습니다.
약물 설계나 시뮬레이션을 통한 메커니즘 분석이나 AI 기반 소재 디자인 같은 일들입니다.
사업이라기보다는 잠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입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슬슬 진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문득 봐버렸습니다.
https://www.chosun.com/economy/smb-venture/2024/03/06/FBESGKWLJZCSRCP5CIIJM7FV7A/
딥마인드의 수장 데미스 하사비스 씨입니다.
학생 시절부터 제가 거쳐간 연구주제들이 초전도체 이론, 단백질 구조예측, 신약개발, 소재 디자인 들인데...
왜 데미스 하사비스 씨는 제 연구분야에 이리 관심이 많으신가요. 경쟁자가 너무 심하게 괴물입니다.
이러다가 데미스 하사비스 씨가 상온 초전도체 개발해서 노벨상 하나 더 타시는 거 아닐까요?
 얼마 전부터인지 문득 제가 하는 연구들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의미가 없다는 아닙니다. 나름 뭔가 메시지가 있고, 가치가 있는 연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성과가 정말 세상에 큰 파급력을 가질까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하는 연구는 개인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 정도입니다. (업무적으로 하는 일과는 별개입니다.)
컴퓨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죠. 가치 없다고나 필요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취미생활 수준의 연구입니다.
큰 파급력을 가지거나 세상을 바꿀 수준의 연구는 아닙니다.
문득 왜 제가 회사에서 나왔는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있던 회사는 AI 신약개발 회사였습니다. 저는 당시 연구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앞으로 어떤 연구가 중요한 주제가 될지 생각을 했습니다.
단백질-리간드 docking을 1억, 10억 개 수준의 분자에 대해 대량으로 진행한 연구가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석을 해보니, 데이터베이스에는 서로 유사한 분자가 많기에 굳이 이렇게 다 하지 않더라도 1% 정도의 분자만을 선택해서 도킹을 진행한 후, 나머지에 대해선 이들과의 유사성이나 AI 예측으로 선별하는 방법을 택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런 형태로 연구를 진행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가 좋은 연구가 되기 위해서는 실험적 검증이 필수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회사에선 실험적 검증을 위한 지원을 할 의사가 없었고, 결국 저는 거기서는 제가 원하는 대로 연구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왔습니다. 거기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연구는, 그냥 집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연구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제가 생각한 방법들로 좋은 저널에 논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참 착잡했습니다.
연구는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연구 여건이란 책상과 월급이 아닙니다.
좋은 연구 여건은 내가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곳이고, 좋은 동료들이 있는 곳입니다.
비전을 공유하고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을 함께 이루는 곳입니다.
항상 퇴사할 때마다 비슷한 이유였습니다. 그런 진짜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 혼자 일하는 곳에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정작 그 후로 용역으로 생계와 연구비를 벌면서 개인연구를 하고 있군요.
회사 다닐 때에 비하면 개인적으로는 여러 면에서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러려고 퇴사한 건 아닌데... 정말 다른 회사에선 할 수 없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보고 싶어서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인데, 이대로 괜찮은 건가?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연구를 하던 이유도 논문을 써서 학계나 산업계에 이름을 알려야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가 단지 연구로 끝나지 않고 파급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사업에는 큰돈이 필요하고, 부담이 되기 때문에 느린 길을 가고 있습니다만... 세상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소재 개발을 진지하게 하는 게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단 학교 연구실과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과제를 바라보고 연구를 한다는 것은 불안정하고, 새로운 과제를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이 있고, 한 연구에 많은 것을 투입하기도 어렵습니다. 아직 어떤 형태의 사업화를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지금처럼 연구 용역으로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직접 소재를 개발하는 것을 사업으로 해야 하는지... 직접 개발하려면 어떤 물성의 소재를 개발하고, 그것으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지... 물질의 권리를 판매할지, 아니면 직접 물질로 제품을 만들지.. 직접 제품 생산을 한다는 것은 연구자에게는 잘 맞지 않는 일이죠. 그리고 물질의 권리로 수익을 내려고 해도, 그 수요가 있는가, 기존 물질보다 어떠한 차별성이 있는가 등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단지 물질의 특성이 좋다만이 아니라, 경제성도 있어야 하니까요. 사업은 단지 내가 연구를 잘해서 좋은 물질 만들 수 있는가 라는 정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 위험부담을 줄이라면 결국 지금처럼 연구 개발 용역으로 진행하여야 하지만, 그럴 경우 정말 제대로 된 연구가 가능할까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협업은 어렵습니다.
딥마인드는 회사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에 대해서 많은 돈과 시간과 자원을 투자합니다. 그 일에 필요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다면 전문가를 데려오고 내부에서도 상당한 전문 지식을 쌓습니다. 저도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를 했고, 제가 속했던 연구 집단의 예산 규모를 대충 알기 때문에 이 연구가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제공되는 인건비 및 연구비+ 별개의 정부 연구과제 + 원이 보유한 컴퓨터 자원 등을 합산하면 연 예산은 15억 이상이었습니다. 박사급 인력 10여 명에 가까웠습니다. 그 정도를 투입해서 CASP 2위 정도까지 올라갔습니다.
 딥마인드는 연봉도 훨씬 높고 장비 규모도 훨씬 크니까 아마도 연간 100억 이상을 투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의 회사가 어떤 일을 한다.라고 홍보했을 때 (예를 들어 바둑 AI를 만들어서 시연한다 같은...), 그 일에 몇 명의 인원과 시간과 자원과 예산이 투입되었을까요? 유명한 회사라면 모르겠지만, 작은 회사의 경우 돈을 지불하고 기사를 게재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다른 회사와 MOU를 체결한다던가, 어떤 계약을 하였다던가 어떤 사업을 시작했다거나 등...
저도 여러 회사를 거쳤지만, 정말 진지하게 뭔가를 이룰 생각이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어떻게 정부과제나 용역을 수주할까 어떻게 투자유치할까 정도의 고민이고, 정작 연구와 기술개발이나 사업성에 대한 검토는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혀 아름답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한 7년 정도 고민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연구를 체계적으로 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까지는 대략 답을 낼 수 있지만, 투자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애초에 그런 교육받은 적도 경험한 적도 없습니다. 이게 한국에서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위상이 낮은 이유가 아닐까요. 연구가 사업화가 되어 수익이 나고 그 돈이 다시 연구에 투자되는 순환이 되어야 하지만, 대체로 연구는 정부 지원 자금으로 진행하고, 결과가 나와도 사업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R&D가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라면 과학기술인에 대한 위상은 저절로 향상되었겠죠. 일부 잘 나가는 산업에 대해선 원동력이 맞긴 합니다만... 그렇지 못한 분야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단지 투자받고 정부 과제 용역 하고 상장하고 엑싯하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연구 결과가 수익으로 이어지고 세상을 바꾸는 사업이 많아져야 합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투자유치가 어려우니 투자 유치나 정부 과제 수주에 힘쓰고, 그러기 위해 정작 체계적인 연구개발이 아니라 보여주기식으로 시간과 자원을 소비하고, 그러다 보니 핵심 인력들의 의견은 존중되지 못하고 인력이 유출되고 회사의 기술 수준은 발전하기 어렵고, 좋은 실적이 나오기 어렵고 그러니 또 투자가 어려워지고...
보통 사업을 한다고 해도,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다른 일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주력 사업에 대한 부진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것이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기긴 하지만...
애초에 정말 제대로 된 사업 모델이나 역량을 갖추고 시작한 것인지도 궁금하고, 사업 그 사업에 진정성이 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그게 있어도 이렇게 악순환에 빠지는지, 없어서 이렇게 되는지... 대체 뭐가 문제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이 성공하고 실패하고는 딱히 제 사정이 아니지만, 그런 것을 모른다면 제 사업도 마찬가지로 악순환에 빠지겠죠. 7년이나 고민해도 아직 답을 못 찾고 있습니다. 대체 얼마나 어디까지 준비해야 사업을 시작해도 되는 것일까요. 
아마도 몇 년 전 인공지능 신약개발 붐이 일었던 것처럼, 조만간 소재 개발 AI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어떤 포지셔닝을 택해야 할지 어떤 수익모델이 현실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정말 진지하게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그것은 수요면에서는 상당히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이렇게 주저하지만, 딥마인드는 진짜로 할 거 같아서 무섭네요.
그런데 결국 답은 정해져 있고, 각오를 정하는 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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