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인공지능 스타트업과 신약개발 회사를 지원하고 둘 사이를 중계하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
일단 저는 인공지능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니,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사업가가 느끼는 어려움도 있지만, 연구원이 느끼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저는 일단 연구원이었기에 연구원의 입장에서 글을 쓰겠습니다.
이미 사업 초창기라고 하기도 어려운 시점인데 여전히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다는 생각만 드는군요.
1. 전문 인력 부족, 소통의 어려움
신약개발은 어려운 일이고, 인공지능도 어려운 일입니다.
신약개발에 필요한 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그만한 인재가 있는 경우에도, 그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의 시스템적인 문제들은 둘째 치더라도,
프로젝트를 끌고 진행할만한 리더도 부족하고, 리더의 요구를 이해하고 구현할 역량을 가진 팀원도 부족합니다.
신약개발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과, 전문적인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에 인공지능 인력도 부족하고, 그중에서도 화학이나 생물학과 관련된 사람은 더욱 부족하고, 신약개발 인력도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특허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보니, 소통의 부재가 큰 문제가 됩니다. 인공지능 연구자/개발자는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고 (논문을 위해서) 정작 이런 메서드들이 신약개발에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선 저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인공지능 연구자의 입장에선 결국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공급자의 책임이다.라고 생각합니다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대화라는 것은 내 언어로 내가 아는 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할 때 성립할 수 있습니다.
2. 프로젝트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움
인공지능 스타트업은 대부분 신약개발을 잘 모르고, 특히 타깃을 선정해서 신약개발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역량도 없고, 실험을 직접 할만한 지식, 시설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제약사나, 바이오텍, 대학 연구실에서 파트너를 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약사의 경우, 이전에 성과가 있는가의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회사가 경력 같은 신입을 원하는 것처럼, 그 회사의 고객도 경험 있는 회사를 원합니다.
그래서 애초에 시작도 못해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어떤 회사는 그래서 직접 타깃을 정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하고, 또 다른 회사는 대학에서 파트너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이오텍이나 학교에선 메커니즘이 명확하지 않은 타깃이나,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타깃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나마 의약화학자의 경우는 기술적으로 쉬운 타깃을 선택해주긴 합니다만... 그리고 학교의 교수님들은 워낙 바쁘셔서 프로젝트에 그렇게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서로 계약을 하려고 할 때도, 어떤 조건으로 어떻게 계약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3. 실력을 검증하기가 어려움
2번과 비슷합니다만, 어떻게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합니다.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좋은 성과를 낸다... 말은 좋지만,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좋은 결과이고 좋지 않은 결과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지표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 신약개발 회사에서 단백질에 결합하는 약물을 설계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 기술로 약물이 단백질에 결합하는 약물을 찾았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것이 타깃 질환에 대해선 아무런 효력이 없다면 어떨까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타깃 질환에 대한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서 타깃 단백질을 잘못 설정했다면, 혹은 단백질은 맞고, 약물이 결합한 것도 맞는데 그 약물이 기능을 제대로 제어하진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ADMET 중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약물이 원하는 세포까지 정상적으로 도달을 해야 약효가 나타나겠죠. 단백질에 결합하는 약물을 설계하는 기술 자체는 좋을지라도, 다른 이유 때문에 약효가 나타나지 못했다면, 이것은 기술 검증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약개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정말 타깃 질환 및 단백질마다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불분명한 채로 일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깃 질환에 대한 이해조차 불분명한데,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약을 탐색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인공지능 회사 입장에선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약물을 만들어주길 원하는지 잘 정리돼서 명확하게 해야 할 일이 확정된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술이 있어도, 적절한 타깃을 만나지 못해서 검증이 안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다 보면 결국 메서드 검증을 위해서 자체적으로 타깃을 정해서 진행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kinase가 만만해 보입니다. 여러 회사들이 Kinase inhibitor를 개발하려고 하는 이유가 그나마 kinase에선 해야 할 일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kinase에 대한 전문성을 가져서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많은 암의 타깃이기도 하고요. 독성 예측 같은 것을 잘할 자신이 없으니 독성이 있어도 어느 정도 용인되는 암을 타깃으로 잡는 것이죠. 그리고 일부 회사는 그냥 진짜 별생각 없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합니다.
여담으로 kinase의 특징으로, 약물들의 구조, 혹은 서브 구조들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ATP binding pocket을 타깃으로 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kinase의 포켓 구조들 역시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같은 물질이 붙는 포켓 구조이다 보니, 구조 차이에도 어느 정도 제한이 있습니다. ATP가 붙는 포켓이다 보니 보통 아데닌의 구조와 유사한 것을 약물의 코어 구조로 사용합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특허에서도 kinase 억제제의 경우는 약물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서 특허 범위를 좁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EGFR 같은 경우는 변이가 많은데 이런 변이가 내성의 원인이 되고, 각 변이에 특화하여 내성 환자를 위한 약물들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약물들은 이전의 약물들과 구조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이런 특징을 알고 약물 개발 전략을 만들어야 하지만, 이런 상황조차 모르고 kinase를 타깃으로 잡고 진행하기도 합니다.
4. 실제 프로젝트 진행에서 겪는 어려움
어떻게든 프로젝트 시작 단계까지 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잘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경험자들이 프로젝트 계획을 세우면 정말로 한심한 수준의 계획이 나옵니다.
계획이란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같은 것이 다 필요합니다.
먼저 하려는 일이 명확해야 합니다. 약물 개발이라면, 어떤 약물을 만들려고 하는지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냥 AI 돌렸더니 약이 나온다. 같은 것을 기대해선 안됩니다.
타겟 질환의 생물학적 약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타깃 단백질의 화학적 메커니즘도 이해하고, 설계, 혹은 탐색하려는 약물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도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거기에 약물이 만족해야 할 ADMET 나 side effect도 고려해야 합니다.
타겟에 맞는, 상황에 맞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탐색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20억 개의 Enamine REAL에서 스크리닝을 한다면, 이들 전체에 대한 스크리닝을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일부에 대해서만 스크리닝을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20억 개를 전부 스크리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크리닝 메서드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랜덤 샘플링한 10만 개에 대해서 스크리닝을 하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지식의 부족으로 별 쓸모없는 옵션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자주 보입니다. 사용하는 툴의 특징, 데이터베이스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사용해봐야 의미 없고 계산량만 많아지는 옵션들과 잘못된 절차 설계로 비효율적이면서도 결과도 좋지 않은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신약개발에서 내세우는 것이 비용과 시간 절감인 것을 생각하면 합성과 분자 구매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컴퓨터로 할 일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1주일 정도면 이미 분자는 선별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합성 혹은 분자 구매를 진행하다 보면 그 과정만 2~ 6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실험에 또 한 달이 걸립니다.
그동안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거나, 아니면 시뮬레이션 결과는 쌓여가지만 아무런 검증이 안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못 정하는 상황이 됩니다. 모든 병목이 실험에 있습니다. 신약개발 사업을 생각하면 인공지능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석하게도 연구자에게 사업 전체에 대한 권한을 주는 회사는 별로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효율적인 분자 구매를 위한 전략을 작성하고 제안했지만, 결국 프로젝트에 그런 의견은 반영되지 않더군요. 사업이라는 게 내 맡은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만... 현업에서 발생하는 비효율 문제는 현업 당사자가 제일 잘 압니다. 그걸 개선할 방법도 당사자가 잘 압니다.
내가 한 일의 피드백을 6개월 후에나 받는다면, 그게 제대로 효과가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fragment based screening 방법을 개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젝트 진행이 더 빨라지진 않습니다. 그것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려면, 구매 및 합성 계획이 함께 개선돼야 합니다.
어차피 처음 선별한 물질이 바로 좋은 약효를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두세 번 선별과 실험을 반복할 것을 고려해서 계획을 세워야 하고, 첫 번째 선별에서 얻어야 할 것은 좋은 약효가 아니라, 다양성 확보 및, 단백질과 약물 특성의 이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이해를 해야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도 가상 스크리닝의 선별 분해능(resolution)이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 시도에선 합성이 쉽고 단순한 분자 위주로 선별하고, 그중에 가능성 높은 것에 대해서 2~3차에서 집중적인 선별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아날로그(유사구조)에 대한 스크리닝은 기존 방법에서도 다 하던 일이죠. 이것은 단지 좋은 약효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약물이 단백질과의 결합에서 어떤 부분이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데이터를 얻어야 QSAR(구조 활성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초기 선별에서 합성이 쉬운 분자들을 위주로 선별한다면, 합성 비용 및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간단한 합성은 building block을 구매해서 대학원 연구실에서 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선별 분해능이 낮다면, 비싼 분자 1개 실험할 거 싼 분자 5개 실험하는 게 더 낫습니다.
또한 특허도 문제입니다. 신약개발 사업은 철저하게 영리 사업이고 수요에 의해서 사업이 진행됩니다. 신약개발에선 특허도 매우 까다롭고, 사업에서, 그리고 메서드 개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도 변리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봤지만, 명쾌하게 어떻게 해야 특허를 피할 수 있다 같은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해보고 싶은 일은
1. 실무가 가능한 인력 육성 사업
2. 기술 검증을 위한 신약개발 대회 개최
3. 제약사/인공지능 스타트업/학교 중계 프로그램 운영
4. 물질 구매 및 합성/검토 지원사업 및 법률, 특허 자문
5. 정기적인 미팅/스터티 모임 개설
6.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자문을 할 수 있는 자문단을 구성하여 프로젝트 진행에 조언
7. 투자자/스타트업/예비 창업자/자문단 연결
입니다.
사실 제 경험은 제 경험일 뿐이죠. 이런 일을 혼자 생각하는 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고, 그전에 충분히 제약사, 인공지능 스타트업, 대학 연구진, 정부 관계자분들을 만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듣고 정리하고 그 후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공익을 위해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나 혼자의 생각 이어선 안됩니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그런 원칙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제가 전 직장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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