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요리와 문화

Novelism 2021. 11. 21. 00:28

 

 대학원생 시절 자주 했던 요리들은 주로 무, (양)파, 마늘, 고춧가루로 국물을 낸 요리였습니다.

여기다 고기를 넣을 수도 있고, 해물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은 간장과 소금으로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마른 멸치라면 간장으로 간을 하고, 오징어, 새우 같은 다른 해물이라면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베이스가 비슷하다 보니 재료를 바꿔도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날 알탕을 끓여먹었으면, 그다음에 양을 늘리기 위해 버섯과 두부를 넣고 두부찌개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질려버렸습니다. 무슨 찌개를 해도 다 같은 맛이 나니까요. 

이게 해물탕인지 어묵 두부찌개인지, 버섯전골인지... 

 무, 양파, 마늘, 고춧가루 간장의 한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재료를 좀 바꿔보려고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미국 학회에 출장 가서 해물탕에 고춧가루 대신 토마토를 넣어도 맛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토마토를 요리에 자주 활용했습니다. 김치찌개나, 두부찌개 같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요리에 토마토를 넣어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맛이 괜찮았습니다. 매운맛은 줄어들면서도 찌개의 색은 진하게 나오고, 토마토도 감칠맛과 신맛이 있어서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요리에 토마토를 사용해도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게 아니라서 같은 맛에 질려버린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온갖 향신료를 사서 직접 카레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중 절반이 민트향이었습니다.) 폴란드에서 먹은 향신료 향이 진한(아마도 펜넬) 토마토 수프가 생각나서 따라 해보기도 했고, 졸업 후 살던 동네에 있던 중국식당에선 즈란 양고기와 토마토 계란 볶음, 가지 볶음, 굴소스와 마라 소스를 사용한 요리들을 보고 따라 해 봤습니다. 동남아 요리에선 국수류에서 상큼한 맛이 나는 것을 보고 나라마다 추구하는 맛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검보 요리를 알게 되어서 요즘에도 자주 만들고 있습니다. 국밥은 소울푸드니까요. 

 

 그리고 몇 년 전 뭉티기 소스를 처음 접하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는 그동안 유사한 재료로는 유사한 맛밖에 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식재료를 찾아다녔는데, 뭉티기 소스는 한식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사용하는 재료 4가지만으로 그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맛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재료는 매우 단순합니다. 생마늘,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입니다. 비슷한 재료로 만드는 양념장도 있습니다. 전 같은 것을 찍어먹는 양념장도 간장, 파, 마늘, 참기름을 넣어서 만듭니다.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살짝 넣기도 합니다. 

그런데 뭉티 기장은 생마늘의 알싸함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다른 소스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뭉티 기장을 만들 때는 항상 고민에 빠집니다. 4가지 재료만으로 본질적인 맛에 다가갈지, 아니면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 멸치액젓, 설탕, 후추 같은 다른 재료들을 최대한 많이 사용할지... 요즘에는 후자의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맛은 좋아져도 뭉티기 장만의 개성이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맛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후천적인 면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요리는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요리도 다른 예술작품처럼 만드는 사람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선천적으로 느끼는 것인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결과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저는 학습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합니다. 요리에는 다른 예술보다 조금 더 강한 특징이 있습니다. 요리는 다른 예술보다 더 정직합니다. 맛이 없으면 먹을 수 없습니다. 음악, 문학, 미술에선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맛이 없으면 그것을 표정으로 숨기기 어렵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도 추구하는 맛이 다 다릅니다. 돼지고기 수육 요리에서 한국요리는 근육이 부드러워지게 익히는 것을 좋아하고, 비계 자체는 퍽퍽함을 줄이는 보조적인 수단이지만, 중국요리에서 추구하는 바는 비계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어서 비계 자체를 즐기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 요리도 부드러움을 추구하긴 하지만, 날계란이나 마 같은 좀 더 미끌거리는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국수에서도 짠맛을 국수의 맛으로 느끼는 문화가 있다면, 신맛을 국수의 맛으로 느끼는 문화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람들이 고수를 싫어하는 원인이, 고수 냄새가 싱크대 배수구에서 비슷한 냄새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트를 싫어하는 이유도 치약에 민트를 넣어서 민트는 식품이 아니고 먹는 게 아니라 뱉어야 하는 것으로 학습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에 따라서 요리 및 식품으로 여기는 맛이 다르고, 이런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으로 학습된 결과물로 보입니다. 솔직히 저도 식품 중에 도저히 못 먹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냥 맛이 별로라고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식품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먹다 보면 그것이 맛있게 느껴져서 지금은 좋아하는 음식들도 있습니다. 맛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달라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요? 

 

 음악, 문학, 미술 같은 다른 예술에서도 다른 작품을 인용한 것과, 당시의 시대정신의 담긴 것들이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관련된 작품이나 시대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인간은 모두 인간이기에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중시하는 작품에선 문화에 따른 이해도의 차이가 적을 수 있습니다만... 예를 들자면 사랑이란 시대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정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용의 소설에선 주요 소재가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선과 악, 충, 같은 개념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서 변해버리지만 사랑은 인류 보편이니까요. 사랑으로 인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려나.... 서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원한다면 아마도 사람은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겠죠. 인간이 다른 인간을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자신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평화가 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