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스타트업의 모순

Novelism 2021. 12. 3. 10:04

 

 이 글은 지극히 제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주변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와 상상이 포함되어 있기에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창업은 새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시장 경제가 태어났을 시기부터, 혹은 물물교환을 하던 시대부터 이미 사업은 있었고, 누군가가 사업을 시작해야 사업이 존재했을 테니 창업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중소, 중견기업, 대기업이라는 분류에서 스타트업(벤처기업)은 조금 특수한 위치에 위치합니다. 규모로는 중소기업에 해당하지만, 이미지적으로는 혁신적인 기술, 자유롭고 존중적인 기업문화, 경직되지 않은 조직관계, 신속성, 차별성 있는 아이디어, 전문성, 독창적 비즈니스/수익모델 등을 갖추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보통 스타트업에 기대하는 바는 대기업이 경직적이라서 하지 못하는 사업을 유연한 사고로 신속하게 해내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현실에서 경험해본 회사들, 그리고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속한 분야의 특수성인지, 아니면 어디나 비슷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업을 아이디어 위주의 사업, 전문성 및 기술 위주의 사업, 자본 위주의 사업의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당연히 이중 어느 사업이라도 사업 수완은 중요하기에 그건 따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요소중 둘 이상이 필요한 사업도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좋고, 기술을 갖춰도 시장 점유율을 어느 정도 이상 올리지 않고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업은 대규모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나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여 적은 투자금으로 제품을 만들고 매출과 투자 이상의 순이익이 발생하는 사업도 있습니다. 기술 위주의 사업은 잘 훈련된 전문가, 기술자가 필요한 사업입니다.

 

제가 속한 분야는 인공지능 신약개발 분야인데, 전문성 및 기술 위주의 사업분야입니다. 이 분야의 특징으로, 신약개발의 전문가라 하기 어렵고,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사업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사업 생태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지금까지 관련 분야의 전통 있는 회사들의 주요 사업모델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일단 이 분야에서 오래 사업을 해온 제약사들 (대기업, 중견기업)들이 있고, 그 회사들이 잠재적 고객이지만, 그 회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알아보지 않고 창업한 사례들이 여럿 있습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주길 원하는지 모르지만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 필요로 할 것 같아 보이는 것을 만들어서 들고 가서 팔려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사업하는 회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인공지능에 전문성을 갖춘 회사는 있어도 신약개발에 대한 지식 자체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사업을 하려는 분야에서 제약사와 동등한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을 보면서 저는 굳이 저 회사가 직접 하는 게 더 잘할 거 같은데, 스타트업에 왜 일을 맡기려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틈새시장을 노리지 않고, 차별성이 없는 사업모델을 만듭니다. 사실 찾아보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사업 모델을 잘 설계하면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상대적일 뿐, 그 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사람을 데리고 있지 않습니다. 

 종사자들도 사업 분야 자체를 배우려는 의지가 적고, 자신이 하던 일만을 계속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약개발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나 논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발굴한 신약 후보물질은 회사로 귀속되지만, 자신의 연구 경험과 논문 실적은 자신에게 귀속됩니다. 직원이 아무리 논문을 많이 써도, 그 사람이 퇴사하면 그 기술은 회사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개발한 기술이 사실은 약을 찾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일은 애초에 논문을 쓰기 위해서 한 일이고 약을 만들기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니까요. 결국 제약사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좋은 선택지였다면, 이미 제약사에 신약개발 성공사례가 많겠죠. 

 무엇보다도 답답한 점으로, 수직적이고 경직된, 그리고 느린 조직문화입니다. 대기업은 검토에 시간이 걸리지만, 스타트업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소모합니다. 프로젝트 관리를 너무나도 잘못합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계획이란 시간, 예산, 인력을 빼놓고선 성립할 수 없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이미 고정적인 요소들을 검토한다면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게 진행하지 않습니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한 단계를 진행하면 그다음 단계의 계획을 그제야 세우려고 합니다. 병렬로 진행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순차적으로 진행합니다. 물질을 탐색한다면, 탐색이 끝나기 전에 이미 구매 관련 계획이 세워져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탐색이 끝난 후에야 구매 계획을 검토합니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데 일이 진행이 될 수 있습니까? 

계획을 잘 세우면 3개월이면 될 일을 6개월~1년씩 소모합니다. 

 시간은 돈입니다. 한 달 지체되면 직원 월급과 장비 및 회사 유지비만으로도 억 이상이 날아갑니다. 하지만 인건비 및 장비 유지비 외에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비용은 수천만 원 이내입니다. 프로젝트가 1달 늦어질 때 날아가는 손실은 그 프로젝트를 몇 번 실패할 때 드는 돈보다 더 큽니다. 잘못된 계획으로 인해서 날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그리고 스타트업이 수평적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팀장에게 권한이 몰아져 있는 경우, 그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완전히 묵살당하기도 합니다. 문제를 아무리 지적해도, 그것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결론: 스타트업이 중견,대기업에 비해서 가지려는 경쟁력으로 유연성, 신속성 같은 것이 있는데, 현실은 전문성은 떨어지면서도 조직문화가 그리 유연하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가 제시되어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일처리는 매우 느린 경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