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느슨한 윤리관

Novelism 2021. 6. 24. 01:19

 

 정의는 죽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급변하고 혼란스럽고 살길은 점점 막막해지고...  

 제가 어린 시절엔 지구촌이나 세계는 한가족이니 하면서 착하게 살라,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가르쳤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유학사상에서 전해내려오는 의를 표현하는 말 중

 견리사의 견위수명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익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가 생각하고,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치라는 말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안중근 의사께서 좋아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살신성인 같은 표현이 있겠군요.

훌륭한 생각입니다. 비단 유학사상을 제외하고도, 전통적인 의, 혹은 정의 대한 관념은 비슷했습니다.

 약자를,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것, 무고한 자를 구하는 것...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결국 한마디로 말한다면, 니가 죽는게 정의다. 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정의가 죽어버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대로 크롤리 문제처럼 누구를 죽이는것이 정의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불쾌할 뿐입니다. 그것을 왜 정의, 윤리적 관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것은 사회적 이익일지는 몰라도, 저는 그런것이 윤리적 관점의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런것은 개인의 행위로서의 정의 에 대한 개념이고... 정의 라기보다는 의 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 상태나 시스템으로서의 정의는 "의" 라는 개념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어쨌건... 정의는 죽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왜 죽었나요... 죽는것이 의라고 하니 의로운 분들은 다 의를 이루기 위해 죽었죠. 윤리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하나의 추천할만한 지침입니다.

 사회가 정의롭다면, 사람이 윤리관을 따른다 하여도 굳이 손해보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의를 행하는 사람은 손해 뿐만이 아니라 목숨이 위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행위를 윤리적 행동이라고 강요하는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윤리관이 과연 오래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유학사상은 긴 시간 세상을 지배했지만, 과연 그 시기의 집권층들이 정말 의를 중시하였는지 의문이 듭니다. 

 윤리관은 껍데기이고 피지배층을 지배하기 위한 이념이 아니었을지...

 

저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따를 수 있고, 따르더라도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는 좀 더 느슨한 윤리관이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죽으라는 법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윤리관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요건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윤리관에 따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위험에 빠져선 안된다." 왜냐하면 손해보는 일을 강요할 순 없으니까요.

 "다수의 사람이 윤리관을 따르는 행동을 했을 때,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어야 한다." 결국 윤리는 다수가 따르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모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윤리관은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윤리는 사회가 더 평화롭고, 구성원들이 행복하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관습 중에는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규범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것들이 좋은 윤리관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선=좋은것=이익 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미래를 볼 때 바람직한것이어야 한다." 사회가 안정되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혼란기에 어떤 행동 하나 하나에 따라서 윤리적 규범을 따르라 한다 하여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동일한 행동에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너무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건 좋지 않습니다.

 안정된 세상에서 다수의 이렇게 행동하는것이 가장 전체에 유익할 것 같다. 라는 것이 윤리적으로 추천할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에 따라 변한다." 위의 것과 좀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윤리적 규범은 시대 상황 가치관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보다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세상의 일은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했을 때 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까? 를 생각하고 다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적절한 윤리적 규범일 것입니다.

 

"사람은 일반적인 최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원칙에 맞도록 자기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 아마도 칸트의 말 같습니다. 누군가는 할 수 있고, 누군가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윤리적 규범으로 강요하는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협박에 의해 굴복했는데, 협박당하지 않고 굴복하지도 않은 사람이 있을 때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므로 협박당해 굴복한 사람들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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