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and Informatics

소재·신약개발에서 정확도 높은 방법론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Novelism 2026. 8. 21. 00:25

 

 


이 글은 제가 신약개발과 소재개발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생각이자, 연구자로서의 제 성향과 신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가 그동안 다른 연구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소재개발이나 신약 설계는 실험이건, AI이건 하나의 메소드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탐색 문제이며,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답을 찾아가는가가 기본 뼈대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기술과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개별 방법론의 성능이 좋다고 해서 프로젝트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방법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놓치는지 이해하고, 그것들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조합할 것인가에 가깝습니다.

 

사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물성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실험은 대체로 비싼 편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그와 연관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대체 실험이나 예측 방법들을 설계 과정에 많이 사용합니다. 실험은 탐색을 위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검증을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모든 실험이 높은 수준의 "검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 개발의 경우라면 궁극적으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가, 리스크 대비 기대 이익이 더 큰가 같은 것을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설계 과정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재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하는 제품으로 만들었을 때 실제로 원하는 수준의 기능이 나와야 하지만, 개발 단계에서는 작은 샘플을 만들고 몇 가지 대체 물성을 측정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양쪽 모두 개발 단계에서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쌓이면, 그 다음 단계의 검증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검증 수준의 실험이 아니라 탐색을 위한 방법론에서는 그것이 "AI인가, 실험인가?"를 지나치게 별개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뮬레이션이나 AI의 예측 결과가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탐색용 실험 역시 최종 검증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양쪽 모두 우리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물성과는 약간 다른 것을 보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부정확성을 가진 탐색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탐색을 위한 방법론과 최종 목표 성능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 그 차이가 왜 생기는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표적 단백질에 대한 저해제를 개발한다고 해봅시다. 어떤 물질이 단백질에 잘 붙는지를 실험으로 측정할 수도 있고, 시뮬레이션이나 AI로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약효"와 바로 대응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자가 표적 단백질에 매우 잘 결합하더라도 실제로는 원하는 기능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합은 하지만 단백질의 기능을 충분히 억제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애초에 선택한 타겟이 질병에서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포 안으로 잘 전달되지 않아서 단백질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체내에서 너무 빨리 분해되거나 다른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작용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탐색 단계에서 보면 좋은 후보였지만, 최종적으로는 좋은 후보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이를 조금 단순화해서 생각하면 False Positive(FP, 위양성)와 False Negative(FN, 위음성)의 관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정 샘플에 대해서 탐색용 실험이나 예측에서는 양성으로 판단했지만, 최종 목표 물성에서는 음성이었다면 FP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탐색 단계에서는 음성으로 판단했지만 실제 최종 목표 물성은 좋았다면 F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탐색에 사용한 실험 자체가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약물-단백질 결합을 측정하는 실험에서 실제로 그 물질이 단백질에 강하게 결합했다면 그 실험은 정확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단백질에 잘 결합하면 좋은 약효가 있을 것이다"라고 그것을 최종 목표에 대한 대체 지표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FP가 발생한 것입니다. 즉, 방법론 자체의 오차와 그 방법론이 측정하는 값과 우리가 원하는 최종 기능 사이의 차이는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측이라는 단어도 꼭 AI나 시뮬레이션에만 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질병을 확실하게 확인하려면 비싸고 부담이 큰 정밀 검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그 검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피검사나 엑스레이 같은 비교적 간단한 검사를 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더 정밀한 검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첫 번째 검사 결과만으로 병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검사에서도 위양성과 위음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다가 "이상한 것이 있으니 정밀검사를 더 해보자"는 연락을 받고, 실제로 정밀검사를 해봤더니 다행히 별일이 아니었던 경험은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어떤 간단한 검사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질병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소재 개발에서도 구체적인 예시는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쉽게 측정하는 물성이 최종 제품에서 필요한 기능과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탐색 방법이 보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최종 기능이 바로 일치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법론을 사용할 때는 단순히 "이 방법의 정확도는 얼마나 높은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정확도가 무엇에 대한 정확도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약물-단백질 결합을 측정하는 실험에서 높은 정확도를 가진다는 것은 둘 사이의 결합력이나 반응계수를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체내에서의 약효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AI 모델의 정확도가 매우 높다고 하더라도, 그 모델이 학습하고 예측하는 값 자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기능과 충분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프로젝트 전체에서의 가치는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려고 할 때는 여러 가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이 방법론이 내가 원하는 최종 물성과 얼마나 정합한가, 위양성이 주된 문제인가 위음성이 주된 문제인가, 그리고 그런 오류가 단순한 측정 오차 때문인가 아니면 두 물성 사이의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인가 같은 것들입니다.

 

그 외에도 비용과 시간, 그리고 얼마나 많은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정확도가 높은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 수행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면 초기에 수많은 후보를 탐색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소 부정확한 방법이라도 매우 싸고 빠르게 수많은 후보를 걸러낼 수 있다면 초기 탐색에서는 큰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방법에서 좋은 후보를 너무 많이 버리는 FN이 발생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결국 방법론의 가치는 정확도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정확도, 비용, 시간, 처리할 수 있는 후보의 수, 그리고 어떤 종류의 오류를 만들어내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 소재 및 신약 설계에서는 하나의 방법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여러 방법을 단계적으로 조합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싸고 빠른 방법으로 넓은 공간을 탐색하고, 그 다음에는 좀 더 비싸지만 신뢰도가 높은 방법으로 후보를 줄이며, 충분히 가능성이 높아진 후보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비싼 검증을 수행하는 식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렇게 교과서처럼 깔끔하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결과를 보고 다시 앞 단계로 돌아가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실패 원인을 발견해서 다른 측정 방법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처음 생각했던 메커니즘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소재 및 신약 설계는 정답을 알고 시작하는 문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를 이용해서 정답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방향을 계속 찾아가는 탐색 문제에 가깝습니다.

 

소재 및 신약 설계 연구에서 뭔가 결과물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 후로도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설계 자체만 놓고 보아도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험을 정확히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좋은 예측 모델 역시 분명 좋은 연구 성과입니다. 하지만 정확도 높은 기술 하나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기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놓칠 수 있는지, 어디에서 FP와 FN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제한된 시간과 비용 안에서 어떤 순서로 방법론들을 조합해야 하는지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이나 인공지능 기술을 잘 다루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소재 및 신약 설계 연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