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원생 때 전공 분야가 응집물질물리이론이었습니다. 주로 고온 초전도체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고온 초전도체의 초전도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어떻게 초전도현상이 일어나는지 그 기원을 찾는 연구였습니다.
뭐 저는 허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딱히 연구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그냥 제 뿌리는 완전히 기초과학에 해당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학생때 내가 하는 연구가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별로 생활에 충분한 돈은 아니지만,
(제 인건비 월 40만원 정도였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에서 나오는 돈이었고, 그 재원은 국민 세금일 것입니다.
얼마를 받던 국민의 돈인 이상, 그것이 국민에게 이로워야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내 연구가 국가에 국민에 무슨 보탬이 되나 고민을 했습니다. 후에 저는 좀 더 응용 가능한 연구를 하고 싶어서 단백질 구조예측, 신약개발 분야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기초과학에 투자해야한다 라는 주장은 몇 가지 진부한 논리가 있습니다.
일단 ChatGPT 한테 물어봐도 잘 답을 해줍니다.
ChatGPT 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답하였네요.
"""
1. 응용과 기술 발전의 토대
모든 혁신의 근원은 결국 기초과학에 있습니다.
2. 지식 기반 사회의 핵심 인프라
기초과학은 국가의 **지식 자본(knowledge capital)**을 축적합니다.
3. 경제적·사회적 파급효과
OECD 등은 기초과학 투자와 국가 혁신력, GDP 성장률, 산업 경쟁력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고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독립성과 고부가가치 산업 창출로 이어집니다.
4. 인류 보편의 탐구와 문화적 가치
기초과학은 단순히 “쓸모 있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의 표현입니다.
천문학, 입자물리학, 생명기원 연구 등은 실용성보다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서 가치가 큽니다.
5.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대비
미래에 어떤 기술이 중요한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의 기초연구가 지식의 보험(policy of uncertainty) 역할을 합니다.
"""
그런데 저는 이런 진부한 주장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딱히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고, 과학적으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과학자라면 그럴듯한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분석하여야 합니다.
위 내용들은 하나하나 따져보면 충분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 반론을 공론화하고 더 비판적으로 이론을 다듬는 작업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듣는 사람의 마음에 전달되고 그럼으로써 무언가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런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
제가 진로를 선택해야 하던 고등학생시절, 혹은 그 이전부터 이공계 위기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과학기술인에 대한 보상과 위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논리라면 왜 30년 가까이 이공계 위기라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동안 R&D 예산은 많이 올랐고, 처우가 더 나아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뭔가 변한 것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일단 기초과학에 대한 위의 주장에 대해 하나씩 반박을 해보고 싶습니다.
1번과 5번에 해당되는 것인데, 기초과학은 응용의 토대인가... 기초과학이 언젠가 쓸모있는 기술로 연결된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은 GPS에서 중요한 이론이고, 반물질은 이미 양전자 단층 촬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오는 결론중에는 "기초과학을 연구하면 언젠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내 연구의 응용성에 대해서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기초과학 중에서 응용으로 이어진 것은 절대적으로 소수 입니다. 기초과학자가 모두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응용보다 기초 과학이 앞서가는 것도 아닙니다.
양자역학은 자연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개발된 것입니다. 그당시의 응용 기술이라 한다면 전구가 있겠군요. 전구는 필라멘트에 전기를 가해 가열하고, 그 높은 온도에 의한 복사로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구의 빛의 스펙트럼은 당시로서는 이상한 현상이었지만, 흑체복사로 설명이 됩니다. 그리고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막스 플랑크에 의해 양자 개념이 도입됩니다. 거기서부터 양자역학이 탄생한다고 볼 수 있겠죠.
즉, 기초과학을 개발하고 한참 후에 우연히 응용기술이 탄생한것이 아니라, 현재 사용 중인 기술이 있는데 그 기술을 더 고도화하기 위해서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기초과학이 필요해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너무 별개의 것처럼 다루고, 기초과학이 응용기술에 선행한다는 관점의 예시들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기초과학의 필요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리 해두면 언젠간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같은 논리에 어떻게 납득하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도움되고 필요한 것이고 이게 있어야 더 발전한다 가 확실히 보이는 사례를 예시로 드는 게 더 낫습니다.
그리고 딱히 억지주장하는것도 아니고, 찾아보면 많습니다. 저도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와 일하고 있지만, 저는 거의 메커니즘 스터디적인 기초과학적인 연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술개발에 필요하다고 그 회사도 이해하고 있고 그러기에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2번과 3번은... 일반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한국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기초과학의 자산은 특정 국가로 귀속시킬 수 없습니다. 대체로 논문으로 공개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알려집니다. 그러니 연구비를 제공한 나라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그 성과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같은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 입장에선 이런 것은 고민 대상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입장에서 성과를 독점할 수 없는 연구에 투자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기초과학연구를 해야 하는가... 일단 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는 세계에 공개될지라도, 연구를 통해 양성된 인력과 인프라는 그 나라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일은 그렇게 양성된 인력과 인프라를 추후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초 연구만으로 끝나고 그 후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국가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기 어렵겠죠. 즉,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연계를 더 강화하고 산업화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번 인류 보편의 탐구는 좀 씁쓸한 내용입니다.
내 연구는 돈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인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연구이다. 뭐 저도 그런 연구 좋아합니다. 저는 응용을 위해서 연구를 시작하는 경우에도 보편적 진리에 다가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백질 도메인 경계예측 연구를 할 때는 갑자기 단백질 도메인이란 진화의 단위이다.라는 기초과학적인 요소와 연결되어버리질 않나... 전사체의 발현량을 정규화하려는 연구에서는 갑자기 다양한 세포들은 생각보다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생명체의 근본적 질문에 조금 다가가는 요소가 연결되어버리질 않나... 제 뿌리가 이론 물리학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과학계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자체에 대한 질문 그것이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시간, 공간, 물질이란 무엇인지... 물리학의 근본적인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생명체라는 신비한 존재에 대한 기원과 작동 원리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런 주제들은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흥미로울 것입니다. 나와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니까요.
그런데, 기초과학이 이렇게 근본적인 질문만 하는 분야는 아닙니다. 고온 초전도체가 초전도를 보이는 이유가 궁금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질문에 대한 관심사가 뚝 떨어질 겁니다. 기초과학 분야가 워낙 넓고 다양한데, 그중에 인류 보편적 관심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분야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그 분야에 관심 가져야 한다라고 저도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인류 근본의 질문에 물음을 던지는 몇몇 분들만 내 연구를 돈으로 평가하지 마라. 지적 호기심을 해결해줄테니 돈 달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런 연구를 동경하지만, 딱히 제가 해온 연구가 그렇다고 주장하긴 어렵네요.
이걸 기초과학에 투자해야한다 라는 논리로 내세우는 건 기초과학의 다양성을 너무 간과한 것처럼 여겨지고, 큰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런 연구를 싫어하거나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만... 과거면 몰라도 현재 이런 연구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특수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싶은 말들을 다시 정리하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기술은 결코 서로 별개가 아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기초과학은 산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유용하다. 기초과학연구는 단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만이 아니라, 인프라 육성으로서도 필요하다. 그것이 갖추어져야 응용 기술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계에는 기초과학자들을 필요로 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 따로 응용연구 따로 가는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R&D 모델은 과학기술 투자가 산업 성장을 이끌고 그로부터 이익을 창출하고 그 돈이 다시 과학기술 투자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순환구조 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계의 기초과학자들을 산업계와 연결하여 공동연구나 연구 용역을 중개하는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과학기술자가 산업을 이끄는 주역으로 서야만 과학기술자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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