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일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실패하는 프로젝트의 특징

Novelism 2021. 5. 8. 12:36

 

제가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입니다. 주로 대학원, 학계, 연구소, 벤처 스타트업 분야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 이외 분야에선 기준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제 대학원생 시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일단 저는 상당히 무능한 대학원생이었고, 석사 졸업하면서 박사 입학할 때 결심이, 석사과정 때처럼은 하지 말자 였고

 박사 졸업한 후 포닥 가면서 한 결심은 박사과정 때보단 더 잘해보자였고... 포닥 하던 연구실 나가면서 그때보다 더 잘해보자... 라고 항상 다시 결심합니다. 포닥하는 동안엔 최근 1년동안의 삶이 이전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많이 배운 것 같다. 라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여러번 분야를 바꾸기도 했고요. 분야 바꾸면 한 1~2년은 상당히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실패할만한 일은 안하고 싶지만... 새로운 것 하는 것보다 기존의 검증된 접근 방법들을 배우는게 오히려 안전합니다.

 

1. 기본적으로 무엇을 왜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일을 시작합니다.

주로 교수님이 이런 거 한번 해보라고 던져주는 일, 하지만 목표가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명확히 알려주지 않고, 학생도 그것을 명확히 물어보지 못합니다. 명확한 방향성이 없다보니 그냥 시행착오를 할 뿐이고... 정말 운 좋아서 뭔가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보통은 낭비되는 시간이 깁니다. 뭐 학생 때는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위안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졸업할 때 배운 것은 (졸업할 자격을 갖춘 것은) 지식이 아니라, 연구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본인 연구는 자신이 그일에 가장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분야의 큰 주제가 무엇인지, 거기서 풀어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스스로 동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결과를 보고 그 의미를 본인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방향성을 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만큼 열심히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던져주는 일을 받아서 하는 정도로는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해도 한사람의 독립된 연구자로서 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일 시키는 사람이 본인도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 설명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설명을 제대로 안해주고서, 정작 왜 그렇게 해왔는지 불평은 심하게 합니다. 하는 사람이 초심자라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시키는 사람은 대체 본인이 왜 시키는지 설명도 제대로 안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일 시킬 때, 저 사람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올까 상당히 걱정하면서 자세히 설명하는데요. 그래도 도저히 말 안듣고 엉뚱한 것을 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2. 일의 목표를 이해 못합니다.

 연구가 필요한 (도전적인) 일이 있고, 이미 잘된다고 알려진 일이 있습니다.
때때로 그냥 된다고 알려진 것을 그대로 하기만 해도 되는데, 굳이 그것을 따라하지 않고, 본인이 맘대로 만들고 안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안된다는 이야기만 하죠. 어디가 어떻게 왜 안되는지는 분석하지 않고. 일단 원래 있는거 그대로 해봐서 되는것부터 확인하고, 그 다음에 필요할 경우에만 바꿔야 하는데, 그냥 내가 뭔가 새로 했다. 라는걸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남이 한거 따라하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 것인지...

 연구가 필요한 일은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적어도 회사에서 일할 때는, 그냥 하면 되는 일인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일인지 이런것을 확인하고 서로 논의를 해야죠. 회사일은 혼자 하는게 아니고, 그 사람의 업무 결과로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됩니다. 결국 돈받고 일하는 것은 일 시킨 사람이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것인데, 그걸 충족시켜주는것이 평가에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쓸데없이 고성능을 만들어봐야 시간이 예정보다 소모되었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애초에 어느정도 기간안에 어느정도 물건을 가져오기를 원하는지를 협의한 후에 일을 해야합니다. 자신이 사용하기 위한 것을 만드는지, 연구 논문을 쓰려는 것인지, 외부에 서비스하려는 것인지에 따라 다른 일이 되는것인데, 일하는 사람이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곤란합니다.

 

3. 계획이 허술합니다.

 이건 주로 회사에서 프로젝트로 경험한 일이지만, 프로젝트의 계획을 정말 허술하게 만듭니다. 그냥 이거 한다. 정도가 계획의 전부입니다. 달성해야할 수준이 어디인지, 얼마간의 기간에 얼마만의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 애초에 수요가 있는지, 수요자가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유사한 것들이 있는지... 그런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좀 더 나아가서, 창업을 할 때... 그냥 제가 하는 인공지능 신약개발 분야로 예를 들어보죠.

포지셔닝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회사가 신약개발 사업에서 어느 영역에 위치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인데... 예를들어 타겟 질환을 정하고, 직접 신약 디자인과, 디벨롭을 해서 임상 거치고 판매까지 하길 원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고... 많은 회사들은 저 중 일부만을 담당합니다. 제약사라고 하여도 다른 곳에서 디자인한 약을 사다가 임상 진행을 하고 적절한 시기에 다른 회사에 팔고 넘기기도 하죠. 인공지능 신약개발 회사의 경우는 주로 신약 디자인 부분을 맡고요.실험적 검증까지 자신들이 하려는 회사도 있는 반면에, 컴퓨터 툴을 개발하고 툴 자체를 판매하거나 플랫폼 서비스를 하려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포지셔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포지셔닝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신약을 디자인하는 회사 입장에선 고객은 그 약물을 구매해줄 제약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제약사가 원하는 약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사업을 해야 합니다. 지금의 인공지능 신약개발에서의 이슈는, 합성으로 만들기 쉬워야 하고, 특허를 피할 수 있을만큼 기존 분자들과 다른 새로운 분자여야 하고, 당연히 약효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인공지능 신약개발 연구들은 합성 가능성 검토가 되어있지도 않고, 새로운 분자를 잘 만들지도 못하고, 새로운 분자에 대한 선별능력도 떨어집니다. 태생적인 모델과 데이터의 문제점이죠. 물론 해결책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것을 고려하지 않고 창업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걸 어떤 기술로 구현해야 할지, 현존하는 방법으로 해결 가능한지, 그 분야의 상식이 무엇인지... 공부를 안합니다.

 

 더 심한 문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연구라는 일은 특성상, 될지 안될지 모르고 하는 면이 있습니다. 될거라고 생각하니까 하긴 하지만, 그래도 안될 가능성도 있는 도전적인 일입니다. 이런 것보다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일은 해보지 않아도 될지 안될지 알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예를들어 인공지능으로 가상 선별한 분자는 실제로 분자를 합성하고 실험을 해서 검증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가상 선별 기술은 연구가 필요한 일이지만, 분자 합성과 실험을 해줄 사람을 구하는 것, 그리고 특허를 검토하는 것은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에 속합니다. 애초에 일 시작하기 전부터, 어디에 맡겨서 합성과 실험을 할것인지, 거기엔 어느정도의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는지 주문하면 바로 되는지, 아니면 대기해야하는지, 그리고 특허 검토는 어떻게 할것인지 같은 변수가 적은 일들부터 미리 검토해둬야 합니다. 일하다 보니 특허법이 바뀌는 일은 많지 않겠죠? 물론 이 일이 수요가 있는지를 잠재적 고객에게 미리 묻고, 그분들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먼저 선행한 후에 문제없이 될 때 변수가 많은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잘 될지 안될지도 모를 연구 해서 결국 되게 해놨는데, 알고보니 제도적인 이유로 허용되지 않는다. 혹은 아무도 돈주고 살 생각 없다. 혹은 그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준비가 안되어있다. 라면 그 일 한 의미가 없잖아요? 알아보는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투자자들은 그렇게 계획성 없는 사람에게 뭘 보고 투자하는것인지도 의문이고...

 

 그리고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일을 잘 하는 것이 본인에게 좋은 평가와 가치 상승으로 돌아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하는 일이 어느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분야에 따라선 한 사람이 한 일이 바로 매출로 이어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그건 사업 영역 고유의 특성이고, 투자자들도 그거 알고 투자한거고, 당연히 경영진도 그점을 고려하여 보상을 해야 합니다. 매출 안났다고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할 순 없죠. 신약개발은 특히나 바로 돈벌긴 어려운 분야이고... 어쨌건 한 일에 대해 가치가 제대로 책정되야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일이 회사에 필요한 일인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이 일의 실패 가능성과 금전적, 시간적, 인력적 비용이 어느정도 되는지,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게 뭔지, 어떤것이 성공인지, 이런것들을 좀 명확히 해놓고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협업 툴을 쓰는데 굳이 공식 툴이 아닌 문자나 구두로 보고하거나... 그러면 그 사람이 일하고 있는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굳이 말하면 저같은 경우는 투자 설명서에 넣지 않을, 혹은 넣을수 없는 일을 굳이 해야하는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진행중이고 아직 공개할 시기가 아니라서일 수도 있지만, 그런것이 아닌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