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g/Computer-Aided Drug Discovery

데이터 시대의 신약개발

Novelism 2022. 10. 15. 12:00

 

변화를 배우는 방법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어느 정도 연속적이고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안다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신약개발에 대해 공부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지식은 정말 좁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흐름을 잡을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약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아마도 근대 이전의 의학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현대의 신약개발 사례에서도 과거 문헌에서 도움을 얻은 사례들도 있습니다. 어떤 과학이든 얼마나 많은 실험 데이터가 쌓이는가와 가설을 어떻게 검증하는가가 발전의 핵심인데, 후자에 대해선 과학적 방법론이 발달하기 전의 연구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쳐도, 전자에 대해선 수천 년 이상의 시간의 힘을 무시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합성 화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의약품은 천연물이었습니다. 특정 물질만을 분리할 수 있는 정제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는 천연물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800년대 이후로 정제기술과 합성화학이 발달하면서 근대 제약산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합성 의약품은 아스피린입니다. 버드나무의 살리실산은 해열 진통에 효과가 있었고, 그 기록이 고대 이집트 문헌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전에도 활용되었던 방법입니다. 하지만 살리실산은 산성이 매우 강하고, 복용 시 위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세틸 화하여 위에 부담을 줄이도록 분자 구조를 최적화한 것이 아세틸 살리실산 (아스피린)입니다. 

 

*곁가지 이야기: 이런 사례들은 저도 들은 것일 뿐이지만, 천연물이 합성 의약품에 비해 안전하고 독성이 적을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만든 것이라면 몰라도, 신약개발 사례들을 보면에서 천연물에서 모티브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천연물의 부작용을 줄이고 약효를 증가시키거나, 경구 복용이 가능하도록 구조를 바꾼 것이 합성 의약품입니다. 천연물 중에서도 독물이 참 많습니다. 신약개발은 독을 배제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독물에서 약의 힌트를 얻는 사례도 있습니다. 

 

 최초의 합성의약품이 19세기 말에 나온 아스피린이라면, 대부분의 합성 의약품은 고작 100년이 조금 지난 지금까지 발명된 것입니다.. 물리학 같은 다른 학문 분야도 수백 년 정도로 짧긴 하지만, 합성 의약품 개발의 역사도 길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반대로 100년 만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단백질, RNA, DNA의 구조가 알려진 것들도 1900년대 중반 정도이고, 인간 지놈 프로젝트가 완결된 것도 고작 2003년의 일입니다. 유전체 데이터를 이용한 정밀 의료나 마커 발굴, 표적 항암제들은 그 이후에나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단백질 종류도 최근까지도 조사할 때마다 숫자가 바뀌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부족했던 1900년대의 신약개발에서 유효물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기존에 알려져 있는 분자들을 수집해서 실험을 반복해가며 유효물질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최적화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유효물질의 구조를 수정해가며 구조-활성 관계를 분석하고, 약효와 ADMET를 최적화해나갑니다. 

 

*곁가지 이야기: 신약개발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유효물질(hit), 유효물질 to 선도물질 (hit to lead), 선도물질 최적화(lead optimization) 같은 용어를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어떤 경우 유효물질과 선도물질을 구분하지 않아서 이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책마다 도 내용이 다르고 해서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알기론 유효물질은 High throughput screening (HTS)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얻은 활성 물질에 대해 사용하는 표현이고, hit to lead (hit 중에서 lead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hit의 analog(구조 유사체)들에 대해 실험을 진행하여 이들 중 활성이 높은 것을 lead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lead optimization 과정에서 구조 최적화를 진행할 때는, 주로 중심 구조를 유지시키면서 곁가지들을 변화시킵니다. 

HTS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비교적 소수에 대해서 탐색하거나, 처음부터 분자를 새로 디자인할 경우에는 굳이 hit, lead를 구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lead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유효물질 하나를 찾기 위해서 단백질의 존재 자체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존재할 것이라 가정하며 존재한다면 그 단백질을 저해하는 약물은 어떤 특징을 가져야 하는가로부터 선도물질을 직접 설계하는 사례도 있고 (위궤양 H2 억제제)

천연물 중 독사의 독에서부터 표적 단백질에 대해 결합하는 유효물질을 찾고, 그것을 경구 복용이 가능하고 단백질에 대한 결합력이 높아지도록 최적화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백 년간 많은 연구 결과들이 누적되어 지금은 표적 단백질에 대해서 하나 이상의 유효물질이 선행 연구로 공개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hit부터 새로 찾지 않아도, 알려진 물질의 구조를 참고하여 새로 분자를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아예 다른 타입의 약물을 개발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 물질을 참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표적 단백질에 대한 유효물질이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그 표적단백질의 homology 들에 대한 유효물질들에서 표적 단백질에 결합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 것보다,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더 쉽고 유용합니다. 데이터가 존재하는 시대의 신약개발은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많은 선행연구들이 논문으로 공개되어있고, 이들을 활용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연구입니다. 논문의 양이 방대하여 사람이 수작업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진다면, 컴퓨터와 데이터베이스의 활용이 중요해집니다. 

 저는 결국 미래의 신약개발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당장 가능할지 아닌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지만)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만능의 도깨비방망이나, 과거의 신약개발과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로부터 이어지는 미래를 향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가 없어서 활용하지 못했던 시대를 지나 데이터가 축적되고 활용되는 시대, 그리고 데이터가 풍부하여 더 이상 사람이 직접 분석하기 어려운 시대에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방법일 뿐입니다. 

 

제가 만나본 어떠한 신약개발 연구자들은 데이터가 자신의 연구의 어디에 필요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활용은 그 연장선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생물정보학은, 도저히 인간이 직접 분석할 수 없는 대량의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면서 컴퓨터를 활용해야만 하기에 발전한 분야입니다. 인간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한두 가지 변수와 결과 사이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정도이고, 세 개 이상의 변인이 함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분석은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성분을 가지는 데이터를 빅데이터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선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두 개의 변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인공지능을 주어준다고 해서 더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에서 양자역학이라는 혁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습니다. 

"과학에서는 사람들이 되도록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즉 우선 좁고 윤곽이 확실한 문제의 해결에만 한정시킬 때, 그때에만 결실 있는 혁명이 관철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난센스에 이르게 됩니다. 확립되어 있는 것을 모두 뒤집어엎으려는 짓은 자연과학에서는 다만 무비판적인 반미치광이 같은 광신자들 만이 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런 시도로부터 무엇이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역사상으로 보더라도 영속적인 혁명은 다만 좁게 범위가 한정된 문제만을 해결하고, 되도록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