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Novelism 2022. 4. 7. 23:42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연구실의 연구비는 연 3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생은 3명 정도 있었습니다.

 돈이 참 부족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아껴서 해외 학회에 가서 발표도 했습니다.

 뭐 저는 해외출장을 매우 싫어했지만... 해외 출장 가서 발표도 못하는 사람은 졸업시킬 수 없다는 교수님의 방침에 따랐습니다. 

 그 후로 졸업하고 다른 곳들을 다니다 보니, 예산이 많지만 낭비되는 곳들도 많았습니다.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이야기로 예산 소비하기 위해서 보도블록을 바꾼다고 하죠.

 예산을 다 소비하지 못하면, 예산을 깎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산이 깎이는 상황은 어떤 조직에서나 손해로 여겨지는 일입니다. 

 저도 대학원생 시절 이런 현실에 탄식한 적이 있습니다.

조교 업무가 끝나고 조교 회식을 할 때, 관례적으로 고깃집에 갔는데, 그때는 제가 조 교장한테 이야기해서 딱히 구운 고기 비싸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보쌈을 파는 가게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쌈 가게에 갔고, 맛도 좋았습니다. 문제는, 비용이 더 저렴해서 식비 지출이 줄어버린 것인데, 그 때문에 학교에서는 그 후로 조교 회식 예산을 줄여버리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예산을 절약해봐야 아무도 안 하고, 오히려 삭감당하는 페널티를 가해버립니다. 예산 낭비하는 놈이 도둑놈이 아니라, 아끼는 놈이 나쁜 놈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예산을 고의로 낭비하는 일이 생기고, 이 때문에, 예산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며 온갖 규제가 생기고, 그 규제 때문에 정작 제대로 돈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제가 대학원생일 때는, 연구비로 컴퓨터와 노트북 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계산과학이라는 분야는 당연히 컴퓨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컴퓨터는 연구장비가 아니라 범용성 기자재 취급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계는 연구 발표가 중요하기에, 출장 가서 발표를 하려면 노트북이 필수이지만, 노트북도 연구비로 구매하는데 제한이 심했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뒤로 장부를 조작해서 컴퓨터를 살 수 있게 만드는 업체들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가, 오히려 예산의 부적절한 사용과 낭비를 부추깁니다. 

 돈을 횡령은 하기 어려워졌지만, 정작 그이 상의 낭비가 이루어집니다. 돈을 제대로 쓸 수 없고, 심사를 거쳐서 예산을 다시 삭감하니 애초에 깎일 거 고려해서 필요보다 예산을 부풀려서 신청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심각하니 10억을 지원해도 10억의 효과가 나오지 못합니다. 

 정부에선 우리가 돈을 쓰는데 왜 호응은 약하고 결과물은 그만 못하냐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에선 수요와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 예산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정부 과제가 정작 회사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 도움이 필요한 회사는 신청하지 않고, 오히려 과제를 수주하는 것 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그 과제를 가져가는 일들도 생깁니다. 

 

 저는 비록 학계에서 지낸 시간이 길지만, 상인의 기질이 강합니다. 모든 것을 이익과 손해로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를 돈의 망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좀 많긴 하지만, 저는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수요를 파악하고, 그 수요를 채워주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상인입니다. 상인에게 정의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그를 위해 기꺼이 충분한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돈 되는 일이 올바른 것이라는 생각은,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면서, 고통받는 사람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덜 가식적인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정상적인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구조에 의한 수익이라면 저는 반대합니다만... 

 과연 이익을 추구하는 제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조직에서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적어도 제 가치관을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시각은 분명 세상을 움직이는 큰 힘이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가 에너지라는 개념으로 세상의 움직임을 보려고 한다면, 저는 이익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의 움직임을 파악합니다. 

 저는 상인의 가치관을 가졌지만, 상인이 아닙니다. 세상의 흐름에 편승해 거기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저는 인간이 흐름을 타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흐름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업들은, 정부의 지원하에서 성립합니다. 정부의 지원정책에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예산을 소비해도 제대로 된 결과는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변해야 합니다. 반칙을 저지르지 않고, 서로 신뢰로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법은 최소한으로 하되, 엄격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법적인 규제는 많지만, 정작 잘못에 대한 법적 책임은 강하게 묻지 않습니다. 
 왜곡된 규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학계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법대로 하면 도저히 일이 되지 않는다 였습니다. 
 법을 잘 지킨 사람에게 좋은 결과나 나와야 사람들이 법을 지킬 것입니다. 정작 법을 잘 지켰을 때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면 누가 그 법을 지키겠습니까? 그런 것은 정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법은 단지 나쁜 놈을 때려잡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사람들을 바람직한 길로 인도하는 가이드여야 합니다. 결국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행동이 강화됩니다. 법을 만들 때는 그 점을 고려하여야만 합니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을 누가 지키겠습니까? 
규제가 많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것보다는,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되 그 책임을 명확히 지우는 사회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약개발 연구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사람 몸이나 세상이나 참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리 민다고 세상이 그리 가지 않습니다. 사람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지려고 먹은 약이 독이 될 수도 있고, 독성이 있을지라도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 흥미롭지만, 어쩌면 물리학으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시스템일 것입니다.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것이 나아지는 길도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환자를 고치는 약은 존재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세상을 치유하는 길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좋은 약을 만드는 것은, 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부터 출발합니다. 똑같은 약도, 누군가에게는 약이 되고 누군가에겐 효과가 없거나 독이 됩니다. 국가 운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상황에 맞는 올바른 처방이 필요합니다. 
 저는 오만한 물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시스템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분야에 왔습니다. 과학자로서의 지적 호기심 인지, 아니면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의 마음인지... 

 예비군 훈련에 가서 화장실에 적힌 문구를 봤습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믿는 마음이 애국심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사랑이라는 건 원래 그런 것이죠. 헬조선이라고 욕하면서도, 이 나라에 살면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국민들이 애국자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사는 나라, 사회가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