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연구에 AI를 사용해본 이야기

Novelism 2026. 5. 11. 19:09

 

이번 논문 리비전을 약 3개월 정도 진행하면서, 소스코드를 완전히 갈아엎고 논문의 기존 내용도 대부분 버린 뒤 새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제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리뷰어의 코멘트는 아마 일부 내용을 고치고 결과 데이터를 조금 더 보충하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씩 고치다 보니, Method를 Framework으로 확장해야해서 코드의 확장성도 문제가 되었고, 논문의 흐름도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거의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연구 중에서 가장 많은 정성을 들인 작업이었습니다. 이번 리비전에서는 코드 리팩토링과 논문 작성 양쪽 모두에 Chat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을 간단히 적어보려 합니다.

 

코드 리팩토링 

저는 나름 오랫동안 코딩을 해오긴 했지만, 연구 분야에서 코딩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전문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저만의 익숙한 (어쩌면 안좋은) 스타일이 있고, 그 스타일이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코딩 스타일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Python을 C처럼 작성한다든가, 오래된 방식의 코딩 스타일을 그대로 사용한다든가 하는 식입니다. 

물론 계산 속도와 직접 관련된 부분에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소스코드를 배포하기 위한 패키징이나 구조화된 프로젝트 구성 같은 부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그 부분을 많이 고쳐보려고 했습니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절대로 “AI 딸깍”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전 버전의 코드는 돌아가는 초안을 작성하는 데 5일 정도 걸렸습니다. 그런데 ChatGPT를 활용한 리팩토링은 그보다 더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대신 훨씬 더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전에는 어쨌든 만들려고 한 기능이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고, 기능 구현 자체에만 집중했습니다. 반면 이번 버전에서는 확장이 용이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계속 설계를 바꾸고, 코드를 나누고, 다시 합치고, 흐름을 점검했습니다.

제가 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공통의 규칙, 혹은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존 코드가 있는 일에 참여할 때는 그 코드의 스타일을 먼저 배우고, 가능한 한 신규 코드도 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작성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스타일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사람마다 코드 스타일이 제각각이면 다른 사람이 만든 코드를 이해하고 수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남의 코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함께 사용하는 코드를 자기 혼자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혼자 가져다 쓰는 코드라면 상관없겠지만, 함께 관리해야 하는 코드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AI에게 요구한 것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모든 줄을 작성하지 않더라도, 최종적으로 모든 코드는 제가 검수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팩토링 과정에서 기존 코드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스타일이라도 제가 추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의도와 다르게 구현되어도 알아차릴 수 없고, 그 순간 그것은 도움이 되는 정보가 아니라 단지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결국 전체적인 스타일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을 유지하되, 제가 잘 모르는 기능을 구현하거나 구조를 새로 설계하는 데 ChatGPT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능한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스타일로...) 지금까지 제가 작성한 코드들 중에서는 가장 구조가 좋은 코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 작성 이야기

저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첫 번째 버전에서도 번역과 교정을 위해 ChatGPT를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그 정도로만 활용할 생각이었습니다. 문장을 다듬고, 표현을 자연스럽게 고치고, 영어 논문답게 정리하는 정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코드 개발을 진행하는 중간중간, ChatGPT가 계속 논문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아가 없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왜 이렇게 자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원... )

그래서 Introduction부터 새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테스트 방식과 결과 데이터가 이전과 달라지면서, 첫 문단부터 결과 해석까지 논문의 흐름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논문 전체를 새로 쓰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문장 자체는 ChatGPT가 저보다 더 잘 쓰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문장의 흐름을 설계하는 것은 제가 조금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흐름은 제가 주도해서 설계하되, 각 문장마다 근거가 충분한지, 표현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은지, 논리적 흐름이 매끄러운지 계속 물어보았습니다. ChatGPT가 제안한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가 다시 문제를 제기했고, 제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고쳐 쓴 뒤 다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 논의하며 한참을 고쳤습니다. 

저는 원래 글을 비교적 빠르게 쓰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제가 혼자 작성한 후 번역을 돌리는 것 보다 훨씬 좋은 품질의 원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에게 AI 란? 

아마 AI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이 고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조금만 수정하고, 더 빠르게 끝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AI가 반드시 업무를 더 빠르게 만들어주는 도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떤 작업에서는 시간을 크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더 오래 고민하게 만들고, 더 많은 대안을 검토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품질의 결과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제가 하겠다고 결심하고도 5년 이상 끌어왔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허술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 버전에서는 그냥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성능에 대해서도 저 스스로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고, “일단 작동한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리뷰어들의 코멘트를 보면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게 되었고, 그들이 제안한 부분들을 하나씩 반영하다 보니 저 역시 이 메서드의 특징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연구 자체를 다시 이해하고 완성도를 높히는 과정이었습니다. 만약 ChatGPT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이정도로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AI는 내가 고민하고 싶지 않고,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대신 해줄 존재가 아니라, 내가 더 잘하려고 할 때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존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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