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g

신약개발을 하는 이유

Novelism 2022. 4. 9. 06:26

 

 사실 저는 고작 3년 전까지만 해도, 신약개발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약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자신이 먹는 약의 성분이나 기전 같은 것을 공부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많은 연구자들이, 사실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연구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해가면서 연구를 하면서 논문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논문은 생각보다도 부족한 점들이 많습니다. )

 

 하지만 3년 전에 만난 분께서, 신약개발을 하려는 사람이, 의약화학을 공부하지 않고서 어떻게 약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셔서 의약화학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의약화학은 단순히 화학적인 정보만이 아니라, 약리학적인 영역도 상당히 담고 있습니다. 약리학은 시판되는 약에 대한 내용이 위주라면, 의약화학은 신약개발을 위한 약리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신약개발 연구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약이라는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체는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하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성립합니다. 그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병입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약입니다.

 3년 전에 저는 병과 약에 대해서, 단백질이 구조적인 문제로 기능이 오작동하는 것이 병이고, 그 기능을 되돌리는 것이 약 이라고 했습니다. 물리학 전공자이며, 단백질 구조예측 연구자였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당연히 그 설명이 맞는 병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병과 약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알려주신 분이 의약화학을 공부하라고 추천해주신 분입니다. 배우 복잡하고, 통계적인 방식에 의해서 움직이는 인체 시스템이 오작동을 하지 않을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오작동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오작동이 일어나도 그것으로 바로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많은 보완 장치들이 있습니다. 인체는 정말 아름다운 예술이고, 아직 인간이 이해하는 바가 매우 적을 뿐입니다. 따라서 병이라는 개념과 약이라는 개념도 이와 같이 봐야 합니다. 병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런 많은 보완장치들이 이 무력화되었다는 이야기이고, 약도 따라서 그 상황을 고려하고 설계되고,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약개발이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을 기계장치로 볼 수도 있지만, 절대로 단순한 기계장치는 아닙니다. 환자의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그 환자에게 맞는 약을 사용하여야 효과가 있습니다. 진단과 처방은 별개가 아닙니다. 

 신약개발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약물이 만족해야 할 조건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주 단순한 통계적인 이야기로 한 가지, 두 가지 조건이 적정 구간에 들어오는 표본은 많습니다. 하지만, 10가지, 20가지, 100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표본의 수는 극도로 적어집니다. 

 

 세상에 완벽한 약은 없고, 무해한 약도 없습니다. 유해하다와 무해하다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고, 조건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환자의 생체 시스템이 교란된 상태에서 그것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면 약이고, 교란을 더 심하게 만든다면 독입니다. 환자에게만 쓰는 약은, 예방약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에겐 약이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에겐 독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예방약처럼 사용하는 약도 있습니다. 장기간 복용해도 독성이 적은 종류의 약이지만, 그것도 나이나 상태에 따라서 다릅니다. 

 인간의 생체와 인간 사회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단순한 기계장치가 아닙니다. 이리 밀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면 저리 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같은 처방, 정책이 다른 결과를 불러옵니다. 의사나 국정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런 점을 간과한다면, 큰 재앙이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연구자로서 하고 싶은 일은, 단지 사람의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이해하고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 이런 시스템들에서 유사한 원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원리를 찾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저는 물리학자이지만, 물리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서 생물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생물학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일반 원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암기과목이라 여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물학에서 많은 의문에 대한 답은 사실 그때그때 달라요입니다. 성에 대한 결정 요소만 봐도, 인간은 암컷이 XX 염색체로 동형, 수컷이 XY 염색체로 이형이지만, 다른 생명체의 경우 암컷이 이형, 수컷이 동형이거나, 부화 온도에 따라서 성별이 결정되거나, 자라면서 성별이 바뀌거나, 암수가 한 몸이거나, 애초에 암수가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물학에도 원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강연을 한 슈뢰딩거도 아마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관심이 옮기게 된 계기중 하나는 아마도 하이젠베르크 자서전 부분과 전체에 따르면 닐스 보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슈뢰딩거가 닐스 보어의 집에 초대받아서 거기서 양자 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토론하다가 슈뢰딩거가 병까지 났지만 닐스 보어가 침대에 있는 슈뢰딩거에게 집요하게 토론을 요구했고 슈뢰딩거는 "나는 양자문제에 손댄 것을 유감으로 여깁니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닐스 보어도 생명 시스템에 대한 통찰이 높아 보였는데...) 

 

 

제가 신약개발 연구분야에 종사하는 다른 하나의 이유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괴로워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이 필요한 사람이고, 제가 먹기 위해서 약을 개발합니다. 

 

참 길게 쓰긴 했지만, 애석하게도 저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단백질 구조기반 약물 설계는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단백질의 약물 결합 부위를 분석한 후에 거기에 들어가도록 손으로 분자를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서 될 것 같다고 여겨서, 공동 연구하는 분께 보내고 그 분자를 주문해서 실험을 해봤더니, 유효물질이라고 나온 정도는 되었습니다. (공동 연구한 분께는 손으로 그렸다는 건 별로 강조하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시스템 바이올로지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저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만들려는 것이지, 단지 단백질에 붙는 물질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니까요.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신이 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한 사람은 한 사람일 뿐입니다. 결국 방법은 돈을 모아서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