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and Informatics

연구자로서 미래를 보는 것에 대해서

Novelism 2022. 4. 27. 23:24

 

 

 저는 대학원생 시절 매우 무능한 연구자였습니다.

학업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알고 있는 지식을 연구에 거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교수님께 의지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학생의 발표를 보고 그동안 제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분은 자신의 연구를 자신의 연구라고 생각하고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정보를 찾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보고, "아... 저것이 자신의 연구이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떤 연구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연구자 본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한 일을 내가 가장 잘 알아야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저는 그때까지 몰랐습니다. 그게 제가 연구자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게 된 첫 번째 계기였습니다.

 

 그 후로 어쩌다 보니 하던 일은 잘 안 풀렸지만, 그 일에서 파생되었던 일이 잘 풀려서 다행히도 졸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석, 박사과정 6년간 별 성과가 없어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7년째에 갑자기 좋은 연구주제가 생겨서 거의 3개월 안에 논문을 쓸만한 결과가 다 나왔습니다. 뭐 실제로 출판된 건 제출하고 나서 1년 후이지만... 아무튼 다행히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비록 운이 좋았던 것이지만, 저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무튼 어찌 되든 갑자기 잘되는 일도 있다...라는 것을 실체감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될 일은 계속 잡아봐야 잘 안되고, 잘될 일은 3개월 안에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거면 굳이 안 되는 일에 너무 괴로워할 필요 없이, 그 시간에 공부하고 좋은 주제를 찾는 게 더 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절망은 오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고작 1달 후도 모르는 사람인데, 세상 끝난 것처럼 절망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건 그저 오만이었을 뿐입니다.

 

 졸업 후에 박사 후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박사과정 입학할 때 각오는 석사과정 때처럼은 하지 말자, 졸업 후 박사 후 연구원이 될 때 각오는 박사과정 때처럼 하지 말자 였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과거보다 더 잘할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를 하였는데, 좋은 분을 만나서 그 연구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인공지능과 연관된 2차 구조 예측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2차 구조 예측의 역사를 한번 훑게 되었습니다. 통계적인 접근방법에서부터 피처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기초적인 통계로는 어렵기에 머신러닝을 도입하고, sequence에서 profile로 전환되면서 단계별로 성능이 향상되는 것을 보면서 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연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연구는 한 계단 한 계단 쌓아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방법론이나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서 기술적인 한계를 넘어서면서 성능 향상을 (break through) 이루는 것을 보다 보면, 앞으로 몇 년 후에 어떤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몇 년 후에 나올만한 연구가 좋은 연구주제들입니다. 그때부터 연구를 하나의 동떨어진 일이 아닌, 다른 연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약개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연구의 의미는 관계성입니다. 최종적인 목표가 있을 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신약개발을 한다면, 하나의 방법론으로 단백질 구조 기반 접근방법을 선택할 수 있고, 이 접근방법에선 단백질과 분자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거나 예측하는 기술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필요한 툴들이 좋은 연구주제이고, 그것이 하나의 큰 목표 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저에게 좋은 연구주제라는것은, 논문 잘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하는  분야가 아니라, 하나의 큰 목표가 있을 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적인 주제들입니다. 박사 후 연구원 때는 단백질 구조예측이라는 큰 주제가 있고, 거기에 연관된 세부 주제들을 연구했고, 지금은 신약개발이라는 큰 주제에 대해서, 거기에 필요한 다양한 방법론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심 가지는 영역은, 단백질과 약물이 상호작용의 원리입니다. 물리적인 원리보다는, 사람이 현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원리에 가깝습니다.